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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버스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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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벌 버스가 걸어온 길


달구벌 5기 지회장 김상도, 부지회장 김종만, 사무장 이제학 체제 출범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대구경북지역버스지부 달구벌버스지회 조직형태(명칭)변경


달구벌 4기 지회장 이선동, 부지회장 박준현, 사무장 김문길 체제 출범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달구벌분회로 조직형태(명칭)변경


달구벌 3기 지회장 남대식, 부지회장 김종만, 사무장 이선동 체제 출범
대구시내버스 휴일감차(토요일감차)반대투쟁 주도적 전개


달구벌 2기 지회장 배병은, 부지회장 이 선동, 사무장 허 태식, 조직부장 배광수 체제 출범
공영차고지 확보투쟁 전개


31일 전국 운수산업 노동조합 설립 신고
2일 전국 운수산업 노동조합 설립필증 교부
백부현 지회장 당선되었으나 2008년 1월 1일 사퇴


달구벌버스 법인 설립 초대지부장 백부현, 부지부장 배병은, 사무장 장태준.
  국일여객 대표이사 권 오성은 고의적으로 차고지 비밀리 매각, 임금체불, 어음부도를 내고 잠적
분노한 노조 조합원은 회사측 상대로 가열찬 생존권 투쟁이 시작되었다.
지역과 연대하여 대구시청과 대구시 대중교통과, 대구시내버스 사업조합 등 집회 및
방문 투쟁과 권 오성 체포 및 경찰송치까지의 투쟁 경과 활동 상황
15일 퇴직금확보 차원에서 차고지와 차량에 대한 가압류준비 (퇴직금약20억)
6일 차고지와 차량에 퇴직금으로 가압류실시 과정에서 차고지 매각 확인함.
(3/31 회사차고지 매각 - 법인의 유일한 재산인 차고지를 음모적으로 매각함.)
차고지 매각 사실을 조합원 설명 - 사장 집 야간 집단 항의방문.

14일 전체 차량에 가압류 확보 (조합원 41명 약 9.7억)

4월말경 대표이사가 조합원 13명 업무방해로 고소함 (사장 집 야간방문이유 - 노조탄압)
11일 5월분 임금 및 상여금체불

22일 상집회의를 대구시 대중교통과에서 실시 보조금 지급, 노조로부터 요구
사전에 지급일 통보 약속함

25일 6월분 월급은 6월 10일 지급 상여금 7월 10일 지급 약속 공고 (불이행)
11일 2개월 체불 상무집행위원회 회의 체불임금 고발결의 - 노동청 고발접수

14일 노동청 고발 늑장대처에 항의 방문 (15일 근로감독관 출장 조사)

26일 임금 체불금 확인을 대구 북부지방 노동사무소로부터 확인원 받음

29일 임금 체불로 인한 카드넷, 법인통장 가압류 접수
1일 조합원 비조합원 비율 (60%대40%)로 광남과 창성으로 분할 매각 제안 대표이사의 약속 불이행 무산

4일 임금체불 청산 비상대책 위원회 구성 7명
(위원장배병은 부위원장 김주섭 위원 박한덕 신삼호 장태준 박원주 김인철)
전원 임금 청산될 때까지 유직계 제출

5일 대표이사, 지부장 등 4인의 대표가 모여 차량 40:13 의 비율로 분할
(노동자 자주 관리기업)가 합의
임금체불로 인한 카드넷 가압류 승인됨

7일 비상대책위원회 법무팀, 대외협력팀 구성
회사로부터 채권, 채무 목록 요구

8일 노,사들 합의내용 약속이행과 부채 해결 등을 위하여 카드넷, 법인통장에 가압류 해지함

9일 시 보조금(1억정도) 확보를 위하여 대구시 대중교통과 항의방문


9기 지부장 장윤식 부지부장 백부현 (양실장체제 - 조직실장,기획실장)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영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노동조합 탈퇴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
(최재복외 48명이 집단탈퇴)
유니온샵 제도에도 불구 회사가 사조하여 계속적으로 두서너명씩 탈퇴자가 늘어났다
5일 장윤식 지회장 사퇴 6일부터 백부현 부지회장 직무대행 체제
이때 노동조합부터 부서장체제로 운영되었다

직무대행 체제로 가다가 3월중순쯤 선거를 통해 백부현직무대행이 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사무장 없는 부서장체제로 운영되었다
30일 국일여객 부도, 대표이사 권 오성이 어음 4,000만원을 미결재한 후 잠적함
노동조합 에서는 고용안정쟁취와 대표이사처벌을 요구하며
매일 시청 앞 집회와 시민 선전전을 위해 대구시내를 누비며 가두행진 진행
14일 조합원들이 대구시의 대책을 요구하며 시장면담을 위한 시청 투쟁을 진행

18일 대구시와 1차실무회의에서 노동조합의 정상화대안을 제시

25일 민주노총 대구지역동지들이 국일 투쟁에 함께 하기위해 국일공동 대책위 구성


5일 조직형태 변경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변경
전국 자동차 노동조합 연맹 대구 버스지부 국일여객 분회에서
전국 민주버스 노동조합 국일지부로 변경


8기 지부장 백부현 민주적인 투표를 거쳐 당선되었고
당선이후 회사와는 대립적인 관계를 가졌고 회사는 조합원들을 탄압했다.

예를들어 예비기사는 한달동안 하루만 오전반을 배차하였고 회사측의 꼭두각시들은
하루만 오후근무 배차하고 29일은 오전반에 배차하는등 관리단에서 노동조합을 옥죄어왔다.
이에 노동조합은 당당히 회사와 투쟁을 하였다.

노동조합을 민주적으로 바꾸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고
황하광 세력들은 회사와 담합을 해서 지속적인 탄압을 하였다.
그에맞서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2002년도에는 복수노조가 인정되는 줄 알았다.


7기 지부장 황하광
선진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조직장악후 개인 사조직 형태로 끌고가서
조합원을 강제하는 노동조합으로 군림
이때 97년도 후반에 노민추 만들었다 급기야 황하광 세력과 민주를 갈망하는 세력이 대립
어용세력은 회사측과 손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3기 지부장 김00 정식투표 절차를 거쳐 선출됨
내부조직의 분란과 전 집행부의 압력으로 정상적인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6개월에 중도하차

민주적인 노동조합운영을 시도하였으나 이때 또한 여전히 어용노조의 색깔을 갖추고 있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당선 목적으로 접대나 향응 등을 서슴치 않고 행했다.
4,5,6기 지부장 박수암
노동조합 지도부 몇몇 사람이 회사측과 밀착
전체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지 않고 자기네들만 잘 먹고 잘사는 형태 유지

88년도부터 95년 12월 31일까지 연임 백수암체제의 노동조합 또한 접대,향응을 제공하고
당선 전체노동자들의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간절히 원한바 버스노동자협의회가 발족되었고
대구에 버스노동자협의회가 발족이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노동자의 권익과 주장을 하게 되었다.


초대, 2기위원장 김정식.3년임기를 두차례 연임
이때 노동조합은 껍데기뿐인 조합형태를 이루었고 노동자로써 정당한 주장하면
바로 정리해고를 당하는 등 회사의 편에 서서 운영되어지던 형태로 전체노동자의
피를 빨고 군림하는 노동조합이었다.
조합원수는 약 80명정도였고 안내양이 있던시절이었기 때문에
차량수는 18대에 불과하였지만 전체 조합원수가 80명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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